학부 연구생 : 고달프다

2025. 7. 1. 11:40끄적끄적/신세 한탄과 수필과 리뷰

진짜 이 표정 그자체였음

사실 학부연구생은 그래픽스 분야로 하려고 했는데, 담당 교수님이 서울 어딘가로 이적해 버리시는 바람에(...) 내 제2분야였던 HCI/XR 분야로 잠시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동계방학 학부연구생을 담당 연구실에서 진행하게 됬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가속도계로 마라카스를 연주하는 데이터를 따와서 손의 움직임 만으로 마라카스의 소리를 만드는 모델을 만드는"작업이 되었다.

 

근데 문제가 대략 4가지 정도 있었는데, 첫번째는 내가 ML에 쥐약이라는거고, 두번째는 타 연구실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는데 내 파트너가 유럽인 석사라는 것이며, 세번째는 내가 고토 히토리마냥 영어 울렁증이 있다는 것이고, 네번째는 심지어 내 책상은 UX연구하는 연구실에 배정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교수님께서도 상당히 안타깝게 여기셨지만, 나는 자리를 셋팅하고 교수님과 면담했을 때 머리가 상당히 까마득 해졌다.

 

물론 교수님께서는 Md나 Dr들 마냥 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을 꽉꽉 채우게 할 요량은 아닌듯 보였으나(...),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교수님의 뒤를 따라 나섰다. 물론 여기서 끝났으면 그래도 어떻게라도 해보기야 했겠다만...

 

문제는 질문 하나에서 시작됬다. 나는 문득 이번 게임 피직스 과목의 학점 비율이 궁금해 졌다. 왜냐하면 A+이 나올 줄 알았던 언리얼 수업이 A-가 뜨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바람에, 학점이 3.4/4.3(3.63/4.5) 으로 떨어져 다음 학기 입시 장학금이 소멸해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자비로운 영통대학교는 나같은 가난뱅이에게 우정장학과 국장을 베푸사, 그닥 부담은 되지는 않았다만.

 

다만 교수님께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까딱하면 청탁으로 이어지고, 이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기에... 나는 조심스래 A비율만 여쭤 보았다. 물론 교수님은 모르신다고 한다, 근데 꽉꽉 채워주시기는 하시다만 0와 +는 잘 안주신다고.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이유를 물어보셨고, 내 입에서는 순간 "아 그 저희과 입학생들은 장학ㄱ..."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다행이도 장학ㄱ에서 멈추긴 했다만, 이후로 나는 봇치타임에 걸려 학점이 어쩌구 기계학습을 말아먹었고 어쩌고.. 내가 A0나 A+를 받으려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했을까, 앞으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질문하려 했었지만 (애초에 A0 이상은 기대도 안했었음) - 졸지에 어째 성적 좀 올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내 뇌가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물론 교수님께서도 내 뇌가 맛탱이 간걸 눈치 채시고는, 학점 변동은 없다고 천명함과 동시에 내가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는 너무 자신을 낮추지 마라며 (내가 짐짝이 되지 않게 노력하겠다 했는데, 그게 부담스럽다 하셨다.) 가서 일이나 하라고 하셨다. 물론 나는 가만히 있었고 - 교수님은 일하러 가라, 다음에 보자며 나를 보내셨다... 나는 그저 죄송하다 말할 뿐이었다. 평소에 굉장히 젠틀하시고 온화하신 교수님이라 다행이었다. 전자과 어느 교수님이었으면, 어후... (그저 빛빛빛 미어캣 교수님... 사랑합니다, 항상 절하겠습니다.)

 

다만 일이 지나고 나서 왠지 모르게 불안함이 다가왔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사실 잘못한 점은 없다, 유일한건 말실수 좀 했다는거.),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상한 사람 또는 비난받을 것이 두려웠는지 (교수님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서 한창을 가만히 있다가, 뛰어 다니다가, 매우 불안해 하다가.. 결국 항불안제를 추가로 까먹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이 됬다.

 

 

연구생들이나 직장인들이 명심해야 할 말중 하나로, "회사 건물을 나가는 순간 모든 일은 잊어버려라." 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잘 안되는 모양이었고, 내 뇌는 여전히 누군가를 매우 불안하고 두렵게 생각하고 있다. 이래서 병역특례 가려는 내 계획이 잘 될련지도 모르겠고, 졸지에 내 사회성은 괜찮은지도 모르겠고... 내 도덕성이 다른 악인들과 다름 없어지는건 아닌지 매우 불안해졌다.

 

1달간의 혼자만의 싸움이, 괜찮을지 모르겠다.

 

울고싶네.

 

 

봇치처럼 기타라도 잘 치면 모르겠는데, 코드 깔짝이는거 말고는 잘난게 아무것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