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부전장애, 사기, 그리고.
1. 피싱 사기를 당했다. 정확히 말하면, 메일 피싱이었다. 대게 외주 사이트에서는 의뢰인과 소통할 때 메일 주소를 보내지 않는 것을 권장하는데 - 피싱 메일을 보내서 나같은 피해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위대한 키프로스의 성님들은 "고객센터가 이메일을 보내라는 것 처럼" 가짜 스크린샷을 만들어서 - 나를 낚아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든 돈을 벌고 일을 해야하만 한다는 나의 강박과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겠지만.
2. 그래서 은행에 가서 증빙 서류를 들고 이의신청을 했다. 뭐 돈을 돌려 받을지는 모르겠는데, 다행히도 가족들이 수습을 잘 해줘서 그나마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관성적인 내 우울장애는 계속 남아서 - "자책을 하지 않아도 자책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인지적인것이 심리치료를 통해서 개선되었다면, 내 마음은 여전히 썩어있던 것이었다.
3. 친구들과 만나서 고기를 먹는데, 도저히 고기가 씹히지를 않았다. 하루에 3끼를 먹던게 1끼로 줄었고, 이대로 가다간 삶과 죽음의 저 경계 어딘가와 터치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볼링을 쳐도 도파민이 안나오는 기적을 경험하고, 친구들에게 도게자를 박으며, 아트 쪽으로 얘기를 많이 했던 친구와 그저 걸어갔다. 사실 나는 남들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서 피해를 주고싶지도 않고, 호소하고 싶지도 않고, 감정의 쓰레기통 마냥 쓸 생각도 없다. 나도 힘든데, 남들은 안힘들겠는가. 그렇지만 그 친구는 괜찮다고 얘기해 주었고, 하고 싶은걸 그냥 한번 찾아보라고 했다.
4. 하고 싶은거라, 사실 게임을 만들 때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집중하게 되고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예전의 내가 수능 공부에 급성 중독된것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LLM과 AGI가 프로그래머를 대체해 CS 학위장이 종잇조각이 되는 상상을 매번 하고, 그에 따라서 내 미래가 어두컴컴하게 느껴지지만 - 그럼에도 게임은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감정에 대해서 가장 잘 전할 수 있고, 피해가 가지 않게 주장할 수 있는 수단이니까.
5. 해서 당분간은 그냥 내가 하고싶은거나 하기로 했다. 강의를 찍고, 자격증을 2~3개 따고 별 희한한 짓을 다 했지만... 그런건 일단 보류해봐야겠다.